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孔明大哭周瑜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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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규봉 댓글 0건 조회 3,057회 작성일 15-08-17 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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孔明大哭周瑜論

海西 吳廷吉

忠義豪傑之士任討伐之丕責而圖天下之大事者其勢孤其力弱其所以濟吾志成吾事者或可以有賴於敵人則其人也雖曰吾之仇敵而其死也豈非吾之不幸乎旣以爲不幸則寜不爲之哀乎旣爲之哀則寜不爲之哭乎然則其哀也非哀敵也哀吾志之不成也. 其哭也非哭敵也哭吾事之不濟也.昔周瑜死孔明代哭之周瑜英雄將也以啚漢爲心者也孔明漢臣也.以興漢爲任者也以興漢之臣而哭啚漢之將此其情乎世人之皆以爲拂情愚則獨以爲覩其迹而未究其心也何者炎綱解紐天下雲擾而感三顧之勤起草廬之中許身驅馳也終始討賊者孔明也鞠躬盡瘁死已後已者孔明也當是時也曹操以陰賊險根之資潛移漢鼎而操之智計殊絶於人非一隅之蜀所能制也操之威勢震慴于世非偏師之亮所能敵也天下之群豪義士無不振腕奮憤而亦莫能聲其罪致其討也唯彼周瑜者以雄烈膽略之人挾全吳形勝之勢一擧而破曹操數十萬衆於赤壁之下終使操顚沛褫魄而義士之勝氣大振於東南則孔明之可以同奮義勇以爲脣齒相須之勢者其不在於瑜乎孔明之可以互爲聲援以成討賊復漢之功者其不在於瑜乎孔明之所欲討者魏敵也而非瑜則莫能討也孔明之所欲興者漢室也而非瑜則莫能興也然則瑜之生也而可以濟吾之也成吾事也瑜之死也而吾志不可濟也吾事不可成也而瑜之生死而係漢之存亡則巴丘卒非孔明之所可哀乎非孔明之所當哭乎然則哭瑜之死者非爲瑜也實爲己也爲己者非爲己也爲討賊者所以爲漢室也不然則勸取蜀者瑜也欲啚亮者亦瑜也瑜於孔明讐也敵也人之所當惡者非讐敵乎惡之欲其死者非常情乎可讐而不以爲讐可惡而不以爲惡哀人之所不當哀哭人之所不當哭哀之而已可也而至於哭哭之而已可也而至於大哭則忠義之至者莫孔明若也嗚呼孔明爲漢之誠雖篤討賊之志唯切而協謨合力之無其人反以敵人之死以爲不幸而終至於大哭其忠憤亦可想見於千載之下而後人之哀孔明而哭孔明者尤有甚於孔明之哭周瑜也可勝痛哉

 

공명이 주유의 죽음에 대성통곡함을 논하다

해서 오정길

충의(忠義)가 있는 호걸(豪傑)의 선비는 도적의 무리를 토벌하는 큰 책임을 맡아서 천하의 대사(大事)를 도모하는 자이니, 그 형세가 외롭고 그 힘이 약하더라도 자신의 뜻을 구제(救濟)하여 자신의 일을 이루는 자이다. 혹시라도 적인(敵人)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그 사람이 비록 나의 원수라 할지라도 그 사람의 죽음이 어찌 나의 불행이 아니겠는가? 이미 불행으로 여겼다면 어찌 그 죽음을 슬퍼하지 않겠으며, 이미 그를 위하여 슬퍼하였다면 어찌 그를 위하여 곡()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그 슬픔은 적의 죽음을 슬퍼함이 아니고 자신의 뜻이 이루어지지 못할까를 슬퍼함이며, 그 곡은 적을 위한 곡이 아니고 자신의 일이 구제되지 못할까를 곡하는 것이다.

옛적에 주유(周瑜:公瑾)가 죽으니 공명(孔明:諸葛亮)이 대성통곡(大聲痛哭)하였다. 주유는 영특하고 용맹스러운 장수로써 한을 도모(圖謀)하려는 마음을 가진 자요, 공명은 한나라 신하로써 한나라를 부흥시키려는 책무를 맡은 자이다. 한을 부흥하려는 신하가 되어 한을 도모하려는 장수의 죽음을 곡하였으니 이것이 그 상정(常情)이겠는가?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모두 상정(常情)에 어긋나다 하였으니, 나는 다만 그 행적만을 보았지 그 마음은 헤아리지 못하였다고 생각한다.

어느 누가 한실의 얽힘을 풀어 그 강기(綱紀)를 왕성(旺盛)하게 하려 하는가? 천하는 매우 혼란스럽고 삼고초려(三顧草廬)한 유비(劉備:劉玄德)의 정성에 감복하여 시골 초막에서 일어나 몸이 구치(驅馳)할 것을 허락하고 종시(終始)토록 도적을 토벌한자가 공명이다. 몸을 다 바쳐 병들도록 능력을 다하여 죽은 후에나 그만 둔자가 공명이다. 이때를 당하여 조조가 음흉한 도적이 되어 험한(險狠)의 자질로써 한실의 왕조를 몰래 바꾸려하는데 조조의 지혜와 계략이 특히 남들보다 뛰어났으므로 한 모퉁이에 있는 촉은 이를 제어할 능력이 없었다. 조조의 위세가 세상 사람들을 무서워 벌벌 떨게 하니 변두리 군사(軍師)인 제갈량은 능히 대적할 수가 없었다. 천하의 수많은 호걸스런 의사(義士)들이 주먹을 불끈 쥐고 분함을 떨치지 않은 이가 없었으나 또한 그의 죄를 성토(聲討)하고 그 토벌에 이르지는 못했다.

오직 저 주유만이 웅렬(雄烈)한 담력과 지략을 갖춘 사람으로 온전히 오나라의 유리한 형세를 이용하여 일거(一擧)에 조조의 수십만 대군을 적벽 아래에서 격파하여 마침내 조조로 하여금 전패(顚沛)하여 혼쭐나게 하고 의사(義士)다운 승리의 기개(氣槪)를 중국의 동남 땅에 떨쳤으니, 공명이 함께 의용(義勇)을 떨쳐 순치(脣齒)가 되어 서로 필요한 세력으로 삼으려 함은 그것이 주유에게 있지 않았던가? 공명이 서로 성원(聲援)하여 도적을 토벌하고 한실을 부흥시키는 공을 이루고자 함은 그것이 주유에게 있지 않았던가?

공명이 토벌하고자 하는 것은 위나라의 도적이니 주유가 아니라면 토벌할 수 없을 것이며, 공명이 부흥시키고자 한 것은 한실이니 주유가 아니라면 부흥시킬 수 없을 것이다. 그러한 즉 주유가 살아있으면 자신의 뜻을 구제하여 자신의 일을 이룰 수 있는 것으로 주유의 생과 사는 한실의 존망이 걸려 있는 것인데도 파구(巴丘)에서 죽으니 공명이 슬퍼할 바가 아니겠으며 공명이 마땅히 곡할 바가 아니었겠는가? 그러한 즉 주유의 죽음을 곡하는 것은 주유를 위한 것이 아니고 실은 자기를 위한 것이다. 자기를 위한다는 것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고 도적의 토벌을 위한 것이니 도적을 토벌하는 것은 한실을 위한 까닭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촉을 취하자고 권고한 자는 주유이며 제갈량을 도모 하고자 한 자도 또한 주유이니 주유는 공명에게는 원수요 적일 것이다. 사람이 마땅히 미워할 자는 원수와 적이 아니겠는가? 그를 미워하여 그를 죽이고자 하는 것이 상정(常情)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원수인데도 원수로 여기기 않고 미워한 데도 미움으로 여기지 않고, 사람들이 마땅히 슬퍼하지 않는 것을 슬퍼하고 사람들이 마땅히 곡하지 않는 것을 곡하였으니 슬퍼하기만 하면 될 뿐이요, 곡에 이르러서도 곡만 하면 될 것이지만 대성통곡(大聲痛哭)에 이르렀으니 충의(忠義)가 지극한 자는 공명과 같은 이가 없다.

오호라! 공명이 한실을 위한 정성이 비록 돈독하고 토적(討賊)의 뜻이 오직 간절하나 서로 꾀를 돕고 힘을 합할만한 사람이 없어 도리어 적인(敵人)의 죽음을 불행으로 삼고 마침내 대성통곡에 이르렀으니 그 충정(忠情)의 통분(痛憤)은 또한 천년이 지난 지금에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므로 후인(後人)들이 공명을 슬퍼하고 공명을 곡함은 공명이 주유의 죽음에 곡하는 것 보다 더욱 심함이 있을지니, 너무나도 애통하도다   

이 글에서 공명이 주유의 죽음을 애통해 하는 것은 어느 개인이 아닌 오직 충과 의의 실천임을 변론하고 있다. 즉 공명은 한실을 부흥시키는 것이 자신의 마땅한 의무로 여겼으니 주유가 비록 적이라고 하지만 그의 죽음은 오히려 천하의 대사를 그르치는 하나의 큰 원인이라는 것을 알고 비통해하였던 것이다. 이를 통해 보면 공명의 정의적 철학과 해서선생의 윤리적 심학이 상통함을 알 수 있다. 서술에 있어서도 독자가 이해하기 쉽도록 그 논리를 단계적으로 전개하였으니 당시 주변사람의 충의실천에 영향을 미쳤으리라 짐작된다. 오늘날 충의의 가치를 떠나서 외침에 시달렸던 조선 중기의 시대적 배경을 고려하며 읽는다면 그 느낌이 한결 가까이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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